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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맺은 우의...'수망상조'로 이어온 中∙韓 민간 교류

신화통신통신사
2026.10.21·4분 읽기·조회 9

(중국 난징=신화통신) 중∙한 양국의 민간 인사들이 지난 17일 장쑤(江蘇)성 창저우(常州) 바이룽관(白龍觀)에 모여 조선시대 시인 조우학을 함께 기리며 그의 묘를 복원하고 생애를 추모했다. 또한 조우학 집필한 '옥산시집(玉山詩集)'의 성과를 발표하고 약 100년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시집의 발굴·정리·출판 과정을 공유했다.

장쑤(江蘇)성 창저우(常州) 바이룽관(白龍觀)의 풍경. (자료사진/취재원 제공)
장쑤(江蘇)성 창저우(常州) 바이룽관(白龍觀)의 풍경. (자료사진/취재원 제공)

조우학은 조선시대의 문인·화가다. 지난 1910년 일본이 한반도를 강제 병합하자 망국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여러 곳을 떠돌다 창저우로 망명했다. 창저우에 도착했을 당시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도 없어 그는 그림을 팔아 생계를 이어 나갔다. 그런 그에게 창저우 지역의 문인과 유지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바이룽관의 도사가 그에게 거처를 내주면서 타향을 떠돌던 시인은 비로소 안정된 거처를 마련하게 됐다.

1928년 조우학은 수십 편의 시와 산문 2편을 집필했다. 그의 글에는 나라를 잃은 아픔과 함께 타국에서 받은 따뜻한 관심이 담겨 있다. 조우학은 1929년 바이룽관에서 생을 마감한 뒤 창저우 헝산(橫山) 남쪽 기슭에 묻혔다.

그러다 최근 광시(廣西)사범대학 조선-한국학연구센터의 추진하에 중∙한 양국 문학·역사 연구자들이 수년에 걸쳐 '옥산시집'의 편찬과 번역을 마쳤다. 시집은 지난해 말 한국 경인문화사에서 출판됐다.

"'옥산시집'은 당시 전란으로 고국을 떠나야 했던 이들의 고난을 사실적으로 그려냈고 위기의 시대에 중∙한 민간 문인 간의 진실한 우정을 보여줬습니다."

진저(金哲) 광시사범대학 교수는 이를 통해 오늘날 주변 운명공동체 구축에 민의의 토대를 다지게 됐다고 소개했다.

바이룽관의 한 책임자는 당시 창저우의 많은 문인이 다양한 방식으로 도움을 줬다며 "수망상조(守望相助·지키고 서로 도와준다)라는 중∙한 민간 교류의 소중한 사례로 후대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창저우와 한국의 인연은 오랜 세월 이어져 왔다. 창저우에는 약 350개의 한국 자본 기업이 진출해 있다. 또한 남양주시, 춘천시와 우호도시 관계를 맺고 경제무역·문화·교육·스포츠 등 분야에서 협력하며 풍성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번 행사에 참석한 장인기 창저우 한국상회 회장은 조우학이 남긴 시에는 어려운 시대를 지나온 중∙한 양국 민간의 깊은 인연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한국 기업이 창저우에 진출해 있고 한국인도 다수 거주하고 있다며 지역 상회 책임자로서 더 많은 경제·문화·청년 분야의 교류 활동을 통해 양국 민간 우의를 계속 증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장쑤성에는 또 다른 수망상조의 사례도 있다.

난퉁(南通)시 랑산(狼山) 풍경구에는 한국의 시인이자 역사학자인 김창강이 잠들어 있다. 20세기 초 그는 수많은 서적을 가지고 가족과 함께 인천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김창강은 1905년 10월 상하이에서 난퉁의 저명한 실업가 장젠(張謇)을 알게 됐고, 두 사람은 금세 친분을 쌓았다. 장젠은 김창강을 난퉁 한모린(翰墨林) 인쇄국으로 불러 편집·교정 업무를 맡겼다.

난퉁(南通) 충촨(崇川)구 김창강 기념관에 설치된 김창강 동상. (자료사진/취재원 제공)
난퉁(南通) 충촨(崇川)구 김창강 기념관에 설치된 김창강 동상. (자료사진/취재원 제공)

난퉁에 온 김창강은 장젠의 지원 아래 여러 뜻깊은 활동을 펼쳤다. 난퉁 쓰제(寺街)에 있는 그의 옛집은 말년에 글을 쓰고 사회활동을 한 주요 장소였다. 이후 현지 주민들은 김창강을 기리기 위해 그의 옛집을 보존했다. 오늘날 새롭게 단장한 김창강 기념관은 중∙한 양국 국민의 오랜 역사적 우의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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