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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탄신 147주년...中 하얼빈에 이어진 추모의 물결

2일은 안중근 항일 의사의 탄신 147주년이다.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역 남광장에 위치한 안중근의사기념관(이하 기념관)에는 민족의 독립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앞장선 그를 추모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우뚝 선 동상과 그 위로 9시 30분에 멈춰진 시곗바늘이 눈을 사로잡는다.

신화통신 2026. 9. 3.

(중국 하얼빈=신화통신) 2일은 안중근 항일 의사의 탄신 147주년이다.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역 남광장에 위치한 안중근의사기념관(이하 기념관)에는 민족의 독립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앞장선 그를 추모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2일 안중근의사기념관을 둘러보며 사진 찍는 방문객. (사진/신화통신)

기념관에 들어서면 우뚝 선 동상과 그 위로 9시 30분에 멈춰진 시곗바늘이 눈을 사로잡는다. 기념관 입구에는 지금은 자오린(兆麟)공원으로 불리는 하얼빈공원 남문 모습이 복원돼 있다. 당시 안중근 의사는 동지들과 이곳에서 거사를 논의하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내가 죽으면 유해를 하얼빈공원 옆에 묻어두었다가 국권 회복 후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달라"는 것이 그의 유언이었다.

젊은 시절 일제 침탈 속에 교육을 통한 국권 회복에 힘쓴 안중근 의사는 민족 존망 위기가 닥치자 고국을 떠나 중국 동북 및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항일 의병 운동을 펼쳤다.

그러던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 일본 추밀원 의장이 특별열차로 하얼빈역에 도착하자 오전 9시 30분 안중근 의사는 의장대가 경례하는 틈을 타 연속 세 발을 발사해 흉복부 급소를 정확히 명중시켰다.

거사를 완수한 그는 도주하지 않고 하늘을 향해 러시아어로 "코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를 세 번 외치며 보국의 마음과 항거의 뜻을 드러냈다. 이후 체포된 그는 가혹한 고문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았으며 1910년 3월 26일 향년 31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2일 안중근의사기념관 내부. (사진/신화통신)

기념관 끝자락의 큰 유리창 너머 승강장 위에는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 발생지'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1909년 의거가 일어났던 현장이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이번 하얼빈 여행에서 가장 뜻깊은 장소였습니다."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은 국경 넘어 기념관을 마련해 국내외 시민들이 순국선열의 발자취를 가까이서 되돌아보고 역사의 무게를 체감할 수 있게 해준 중국에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기념관의 최신 통계 데이터는 높아진 추모 열기를 증명한다. 올 들어 기념관을 찾은 누적 관람객 수는 6만 명(연인원)에 육박한다. 그중 한국인 관광객의 비중이 5분의 1로 예년보다 크게 증가한 모습이다.

2일 방문객들이 안중근의사기념관의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중·한 양국 국민이 공유하는 반침략의 기억과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은 이곳 기념관은 이제 양국의 민간 우호를 잇고 정의의 정신을 계승하며 평화의 힘을 전파하는 특별한 교량으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