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신화통신) "8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일본이 아직도 우리에게 알리지 않은 사실이 얼마나 많은지 이제야 깨닫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일본의 생물전 활동을 수십 년간 추적해 온 싱가포르 역사학자 림 샤오빈(林少彬)은 최근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될 때마다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 얼마나 방대한지 실감하게 된다면서,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각국 정부와 학계가 보다 다방면으로 국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980년대부터 일본의 헌책방과 정부 문서보관소에서 전쟁 당시 문서를 수집해 온 그는 최근 10여 년간 동남아에서 활동했던 일본 제국 육군의 덜 알려진 생물전 부대인 9420부대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왔다.
9420부대는 일본의 광범위한 생물전 네트워크의 일환으로 설립되었으며, 하얼빈(哈爾濱) 731부대를 비롯해 난징(南京)과 일본 본토의 기존 부대에서 차출된 인력들로 구성되었다.
림에 따르면 9420부대는 싱가포르와 오늘날의 말레이시아 지역에 세균 폭탄을 위한 완전한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쥐의 먹이로 쓸 채소를 재배하고 쥐를 번식시켜 벼룩을 증식시킨 뒤, 벼룩에 페스트균을 감염시켜 유리 폭탄에 담아 전장으로 보냈다.
싱가포르에 본부를 둔 이 부대는 현재의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태국·베트남·미얀마 등지에 지부를 두었다.
림은 "일본군이 동남아를 택한 것은 기후 조건이 최적이었기 때문"이라며, 일본 연구진은 벼룩이 섭씨 27~30도, 습도 약 90%에서 가장 잘 번식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연구 결과의 상당 부분은 림과 중국 학자 왕쉬안(王選)이 공동 집필해 2025년 출간한 저서 '일본군 오카 9420부대'에 담겼다.
그러나 새로운 증거는 계속해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영국 국립문서보관소가 최근 공개한 전쟁포로 W. B. 윌리엄스의 증언이다. 이는 영국군 포로들 역시 인체실험의 대상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새로운 단서다.
1942년 2월 싱가포르에서 포로로 잡힌 윌리엄스는 자신과 많은 포로들이 예방접종과 주사를 강제로 맞았으며, 채혈과 함께 '항문에 유리관이 삽입되는' 일을 겪었다고 기록했다.
그는 며칠 지나지 않아 자신을 포함한 다수의 포로에게 심한 두통, 설사, 이질, 복통 등의 증세가 나타났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절차는 서로 다른 수용소에서 3년에 걸쳐 세 차례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같은 증상들이 뒤따랐다.
윌리엄스는 "이것이 실험이 아니라면 무엇을 실험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림은 "이전까지 영국인이 인체실험을 당했다는 기록은 접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가능성이 그에게 완전히 새로운 충격은 아니었다. 그는 2025년 출간한 저서에서도 9420부대가 영국인을 상대로 인체실험을 자행했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이미 제기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1944년 6월 싱가포르에 수용돼 있던 영국군 포로 17명이 당시 싱가포르의 풍토병이 아니었던 쯔쯔가무시병에 걸려 그중 3명이 사망했다.
이와 별개로, 9420부대가 작성한 의료보고서에는 군의관들이 야생 쥐에서 관련 병원체를 성공적으로 분리한 뒤 '쇼난토(昭南島·Syonan-to)'로 반입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쇼난토'는 일제 점령기 일본이 싱가포르를 부르던 명칭이다.
림은 "그 병은 원래 이 지역 풍토병이 아니다"며 "외부에서 유입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직 규명되지 않은 또 다른 과제도 언급했다.
일본이 항복한 뒤 미국은 731부대를 조사하기 위해 여러 조사팀을 파견했다. 당시 731부대는 약 8천 건에 달하는 병리 슬라이드를 미국 측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자료는 지금까지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으며 부대원 누구도 전쟁 책임을 묻는 어떠한 절차도 진행되지 않았다.
림은 국제 협력이 필수라며, 일본과 미국 등 관련 국가가 추가 자료를 공개하도록 만들려면 각국 정부와 연구기관의 공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개별 학자나 대학 차원의 요구만으로는 진전을 이루기 매우 어렵다"고 덧붙였다.
림에게 국제 협력은 단순히 문서고를 개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남아 있는 증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학제적 전문 지식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그에 따르면 1942년 작성된 한 물품 목록을 발견했는데, 이 목록에는 731부대 본부가 9420부대에 6개월 동안 사용할 목적으로 넘긴 수백 종의 화학물질이 일본어 가타카나로 기록돼 있었다.
그는 731부대 본부가 6개월간 사용할 목적으로 9420부대에 넘긴 수백 종의 화학물질 목록이 담긴 1942년 당시의 문건을 발견했던 일화를 떠올렸다. 모든 항목이 일본어 가타카나로 적혀 있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없다면 내용을 해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는 "이 역사적 악행의 전모를 낱낱이 밝히려면 각 분야 전문가들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6월 싱가포르 채널뉴스아시아(CNA)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유닛 731(Inside Unit 731: Japan's Secret Human Experiments)'이 방영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림은 싱가포르가 일본의 생물전 계획과 연관돼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많은 현지 시청자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731부대를 그저 중국에만 국한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며 "이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이후 유럽과 북미를 포함한 많은 시청자들이 그 범위가 훨씬 더 넓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림에게 731부대와 그 산하 부대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재구성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다가올 분쟁의 전조를 읽어내기 위한 경고이기도 하다.
그는 일본의 과거 군사 팽창 역사가 보여주듯, 실제 전쟁은 무력 충돌이 벌어지기 수년 전부터 치밀한 준비 단계를 거쳐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림은 "국제사회는 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며 "과거 침략국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감독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